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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부평 X IZM] 애스컴 아카이브 인터뷰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쉰다섯 번째 주인공은 십수 년만의 신보 < 가리온 3 >으로 귀환한 한국 힙합의 대들보 가리온이다.
비단 1세대와 1.5세대 같은 시기적 구분을 차치하더라도 가리온이 한국 힙합 사에서 점하는 무게감은 두텁다. 신념과 주관으로 또렷한 서사와 철학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 특징적인 사운드스케이프로 가리온만의 인장이 확고한 덕분이다. 공격적이고 전진하는 기운의 ‘무투’와 ‘영순위’, ‘소문의 거리’ 같은 가리온 클래식과 더불어 ‘Underground’와 ‘생명수’처럼 숨은 명곡까지 두 장의 정규작으로 한국 힙합 사에 석 자 이름을 아로새겼다.
십수 년 넘도록 많은 이들이 기다려온 정규 3집 < 가리온 3 >은 개성파 래퍼들의 조력과 갈고닦은 연륜에 경향성 반영까지 더해 가리온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인생과 랩의 격동(激動)과 전투를 체스 게임에 비유한 컨셉트 작품엔 앨범 아트와 트랙명 등 곳곳에 체스의 이미지가 녹아있으며 국힙 산실 마스터 플랜 공연장의 흑과 백 바닥 무늬까지 듀오의 시작과 현재를 아우른다. 1월 4일 홍대 롤링홀에서 신보 발매 콘서트를 앞둔 큰 형님들에게서 기다란 역사가 품은 각종 비화가 술술 풀려나왔고 카리스마 이미지 이편의 상냥함에 인터뷰 분위기도 무르익었다.
왼쪽부터 나찰, MC 메타
2020년 12월 이즘과의 인터뷰 말미에 “다음 앨범은 절대 오래 걸리지 않겠다”라고 약속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메타: 어쩌다 보니 약속을 못 지키게 되었다. 13년이나 걸렸으니까. (웃음)
새 앨범을 내놓은 소감은 어떠한가?
메타: 아무래도 나찰과 나 둘 다 나이도 들고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다 보니 신보 발매로 인한 흥분감 혹은 긴장감은 덜하다. 외려 약 1년간의 음반 작업을 통해 심적 안정감을 느꼈다.
나찰: 메타 형과 비슷한 생각이다. 정규 1, 2집 때 느꼈던 부담감을 다소 내려놓았다. 3집 작업은 무언가 “때가 되었다”라는 마음이 강했고 결과물로 봤을 때도 아주 만족스럽다.
가리온 2, 3집 사이의 십여 년 간의 기간 한국 힙합신에선 오디션 프로그램을 비롯해 변화가 많았다. MC메타와 나찰은 그 시간을 어떻게 체감하는가?
메타: 사실 2010년에 나온 < Garion 2 >부터 환경의 변화가 시작되었다. 2011년 11월 더 콰이엇과 키비 같은 뮤지션이 소속했던 소울 컴퍼니가 해체했고, 그해 초에 더 콰이엇과 도끼가 일리네어 레코즈(1LLIONAIRE RECORDS)를 설립했다. 그 시기엔 가리온이 해왔던 음악과 결이 다른 음악들이 다수 수면 위로 올라왔지만,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강행하자는 나름의 의지가 있었다.
2012년 < 쇼 미 더 머니 >는 2010년과 2011년에 있던 힙합신의 변혁에 또 다른 충격파를 던져주었다. 국내 미디어를 향한 무지성 비판은 아니며 예능 프로그램의 특성도 이해하지만 힙합의 중요하고 진지한 본질들이 너무도 가볍게 취급받고 자극적인 내용들만 들추는 방식이 불만스러웠다. 무언가 동굴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마저 있었다. < 쇼 미 더 머니 > 시즌 1에 나찰과 함께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당시 직설화법과 화를 내는 모습에 “진격의 메타”라는 일종의 밈(Meme)까지 얻었다.
급작스러운 세태의 변화에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었을 것 같다.
메타: 급변하는 추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있을까?”란 생각에 마음을 많이 내려놓았다. 2019년쯤인가 어느 젊은 래퍼가 “가리온이 소화할 수 있는 스타일”이라며 드릴의 도입을 제안했다. 당시만 해도 해당 장르에 대해 몰랐고 UK, US 드릴도 구분하지 못했다. 라임 스킴이나 디자인 방식이 다르기에 플로우 분석 등 어느 정도 연구의 시간이 필요했고 결과적으로 하게 되진 않았지만 그만큼 경향성 반영의 무시무시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나찰: 비단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힙합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하입을 받는 신진 래퍼들의 생각보다 저조한 작품 퀄리티로 인해 듣는 이들도 탄탄한 음악성의 과거 래퍼들을 재조명하게 되었다. 가리온이 들었던 올드스쿨 이후의 1990년대 올드스쿨 MC들이 활동 재개하는 분위기가 있는 걸 보면 돌고 도는 유행처럼 한국 힙합도 다시금 자리 잡게 되는 시점이 오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감이 있다.
힙합에 대한 회의가 없었는가?
나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1집에 참여했고 쓴소리도 더러 들었지만 승부욕이 있다 보니 나름의 노력을 거듭한 후 2집 녹음에 들어섰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겨낸다”란 마음이었다. 2집 작업에도 아쉬움이 크다 보니 3집 전 지난 10여 년간 음악 공부를 열심히 했다. 씬의 급변에도 개인적으로 흔들리지는 않았다. 현재는 “3집 추진력으로 음악에 더 정진하자”라는 마음이다.
메타: 이제 겨우 3집이다 보니 앞으로 더 보여줄 게 많지 않나 싶다 (웃음)
과거 이즘과의 인터뷰에서 MC 메타가 “랩과 TV 공중파에 관계”를 언급한 바 있다. 작금은 공중파가 아닌 유튜브로 다들 모이고 있는 시대이다. 이런 환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찰: < 쇼 미 더 머니 > 가 “파워풀하고 타이트한 랩과 자극적인 캐릭터로 주목을 끌어내는 래퍼”의 획일화된 폼을 조성했다. 이번 가리온 신보를 향한 환호성은 일정 부분 그 획일성의 반대편을 지지하는 마음 아닐까? 인터뷰 서두의 “때가 되었다”라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13~14여 년 시간을 거쳐 가리온 3집을 통해 보여주려는 핵심은 무엇인가?
메타: 3집 작업은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힙합 레이블 한량사 소속 시절이다. 외부 공표는 안 했으나 2019년쯤 한량사와의 계약이 끝났고 그룹 내부적으로 혼란기를 맞았다. 당시 추세와 우리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얽혀 가리온 3집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이끌어줄 총괄 프로듀서의 부재가 컸다. 그래서인지 풀렝스 앨범이 아닌 음악적으로 다소 아쉬운 싱글을 몇 차례 발매했다.
신보의 총괄 프로듀서 딥플로우의 역할이 컸던 것인가?
딥플로우를 만나고 난 후 1년간 느낀 안정감엔 양면이 있다. 우선 포기한 한쪽 면이 있다. 이전의 가리온은 1, 2집을 통해 무언가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면, 앞서 설명한 한국 힙합신의 변화 과정에서 고독감을 느꼈고, 젊은 세대의 판이 되어버린 상태에서 뒷방 노인 취급받는 우리가 설 무대가 있을까 우려했다. 그런 지점에서 3집은 현 시류를 일정 부분 반영한 측면이 있다.
한 편으론 우리가 갈고 있던 칼을 다시금 꺼내 보인 순간이기도 하다. 2015년에 부족했던 자신감을. “(가리온) 형들의 무기가 분명한데 자꾸 다른 곳을 보고 계시냐, 형들의 강점을 보여주면 된다”라는 딥플로우의 조언이 채워주었다. 무언가 엄청난 새로운 무언갈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지금의 방향성을 수용하되 가리온의 정체성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에 음악을 향한 사랑과 안정감이 되살아났다.
딥플로우와의 협업 계기가 궁금하다.
메타: 작년 여름쯤에 우리 둘이 제작비를 마련해서 직접 제작하자고 의견이 모아졌다. 의욕은 많았지만 음반의 명확한 방향성이 모호했고 비즈니스적인 면도 취약했다. 1980년 초중반생 래퍼들 중 술집 대신 카페에서 만나는 “수요 커피 모임”이 있고 거기에서 프로듀서 얘기를 꺼내니까 허클베리피와 넋업샨. 마이노스가 이구동성으로 딥플로우를 지목했다. 그 날 바로 연락을 취했고 딥플로우의 수락을 얻어냈다.
< 가리온 3 >을 한 마디로 압축한다면 어떤 구절이 떠오르는가?
나찰: 앨범 초기 작업부터 딥플로우가 강조했던 “가리온다움”이다. 개인적으로도 “나찰다움”이 잘 투영된 이번 음반이다.
메타: “3집에서 다 찢어버릴 거야”가 원래 전략이었다면 딥플로우를 만나고 나선 그 수가 바뀌었고 그의 판단이 옳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가리온의 올바른 수”라고 요약하고 싶다.
3집에서 “가리온다움”이 잘 표현된 곡을 들어준다면?
나찰: 가장 먼저 작업한 오프닝 트랙 ‘해빙’이다. 이 곡을 만들어 앨범을 채워나갈 다음 트랙들을 상상하고 짐작했던 과정을 즐겼다. 랩적으로 내 특징을 잘 풀어간 작품은 더 콰이엇이 제작한 ‘Post mortem’이다.
메타: 작업 스튜디오에서도 밝혔던 ‘불가침’이다. 딥플로우의 감독을 원활하게 수행했다. 본능적으로 박자를 쪼개려고(비트 안에 리듬을 더 채우는) 하는 편인데 잘 안 쪼개고 편안한 느낌으로 랩 한 노래 중에서 꽤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왔다
개인적으론 ‘불가침’이 베스트 픽 중 하나인데 홍보가 덜 된 것 같다.
나찰: 타이틀 곡 후보로 올라와 있던 곡이지만 아무래도 피처링 아티스트가 많다 보니 홍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앞서 메타 형의 얘기에 좀 더 부연 설명을 하자면 보통 에너제틱한 비트가 래퍼를 잡아먹는 경우가 있고 그때 래퍼들이 텅트위스팅 같은 기술로 생존 전략을 펼친다. 메타 형은 ‘불가침’에서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도 비트에 잡아먹히지 않은 채 곡을 장악했다. 개인적으론 이런 점으로 인해 ‘불가침’이 버거웠다. 강력하고 압박하는 비트를 감당할 감정이 내 안에 없더라. 딸을 키우다 보니 가사도 자연스레 차분하고 감성적으로 자리잡았다.
개코가 참여한 ‘Pawn shop’을 타이틀 곡으로 선정하게 된 과정은 어떠했나?
메타: 더 콰이엇에게 비트를 받은 지점부터 일찌감치 타이틀로 낙점했다. 다만 피처링 아티스트 선정이 비교적 음반 작업 후반부에 결정되었다. 신보에서 장르적으로 매니악한 트랙도 있고 ‘01410’같이 조금 가볍게 간 노래가 있다. ‘Checkmate’에선 피처링 보컬 따마가 특징적이고. 가사로나 후렴의 대중성, 피처링 아티스트 등 다양한 측면을 종합했을 때 가장 무난한 곡이 ‘Pawn shop’이었다.
나찰: 반대의 관점에서 신선함을 부각한 트랙이기도 하다. 억지로 가사를 어렵고 현학적으로 썼던 과거에서 벗어나 굉장히 구어체적인 표현을 많이 담은 곡이 ‘Pawn shop’이다.
신보의 콘셉트를 비롯해 체스를 통해 전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메타: 많은 이들이 예상하듯 “인생의 축소판”이란 의미가 있다. 영미권에서 랩을 “게임 체인저와 게임의 룰러” 등 게임에 비유하는 경우가 잦고, < Garion 1 >의 ‘옛이야기’ 속 “주말이면 체스판 바닥에 비트를 실어 한 판” 이란 소절처럼 매주 무대를 꾸몄던 마스터플랜 공연장 바닥이 체스판 무늬이다. 관객이 많을 때는 무늬가 안 보이고 적을 땐 당연하게도 그 무늬가 잘 보였던 기억이 머릿속에 각인되었고 자연스레 가리온의 이미지가 되었다. 소재로만 사용되었을 뿐 전체적인 앨범 콘셉트까지 간 적은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딥플로우가 그 부분을 잘 살려주었다.
체스가 랩 배틀과도 유사하다.
나찰: 그렇다. 결국 1대 1 전투라는 점이 유사하고 그런 부분에서 단어에 격렬함과 에너지를 싣기에도 좋다.
메타: ‘Pawn shop’의 비주얼라이저에서도 흑백 후드 티를 입은 두 사람이 각각 나(메타)와 나찰을 암시하고 트랙과 앨범 안에서 체스 두듯 서로 경쟁하는 구도를 잡았다.
둘이 붙으면 누가 이기는가? (웃음)
나찰: 내가 진다. 메타 형은 곡을 리드하는 편이고, 나는 성향상 곡 안에 들어가려고 한다.
앞서 앨범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린다고 얘기했다. 불호는 어떤 내용인가?
나찰: 어린 친구들에게 익숙한 ‘영순위’나 ‘무투’같은 힘 있고 빡빡한 랩과 극단적으로 높은 에너지 레벨이 많이 줄어든 채 “왜 이렇게 맹탕이야, 심심하고 재미없네”라는 반응이 있다.
메타: 총괄 프로듀서 딥플로우의 음악관과도 관련한다. 딥플로우와 비슷한 연배의 래퍼들에게 가리온 베스트가 상기한 ‘영순위’나 ‘무투’라면 그에게 있어서 가리온의 정체성은 < Garion 1 >의 ‘Underground’라고 한다. ‘Underground’가 신보 제작의 기준이 된 셈이다.
< 가리온 3 >은 가리온 대표적 특징인 한국어 노랫말에서 탈피했다.
‘해빙’ 작업 시점부터 던진 화두다. “한국어로만 랩을 하는 팀”이라는 정체성이 강점임과 동시에 그 프레임에 항상 갇혀있다는 느낌이었다. 외래어 혹은 영어 등 단어 하나하나를 지적받는 등 마치 신념을 무너뜨린 배반자처럼 인식되는 게 부담스러웠다. 오랜만에 나오는 3집에서 신선한 충격파로 이 틀을 깨보자는 생각이었고 ‘해빙’의 영단어 던지는 느낌도 거기에서 비롯되었다. 딥플로우도 좋은 생각이라며 찬성했다. 기본적으로 체스 용어들이 대부분 영어기도 하다.
타이거JK와 더불어 팔로알토, 마이노스, 쿤타 등 조력자 목록이 화려하다.
나찰: 원래 1,2 집엔 피처링 아티스트가 거의 없었다. 앞서 영단어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새로운 시도라고 봐도 좋다. 원래 메타와 나찰 둘이서 해결하는 팀인데 왜 이렇게 다른 래퍼가 많냐고 아쉽다는 얘기도 많았다.
따마와 스카이민혁의 참여도 색달랐다. 섭외 계기는 무엇인가?
메타: 원래 의도는 아니었지만, 제작 과정에서 판단하에 여성 보컬을 포함하게 된 2집 ‘산다는 게’처럼 보컬이 참여한 트랙이 많진 않다. 아예 보컬을 염두에 둔 건 ‘12월 16일’ 정도밖에 없다. 돈싸인이 프로듀싱한 ‘Checkmate’는 듣자마자 보컬의 필요성을 느꼈고 마이노스의 추천으로 따마를 선택하게 되었다. 데모를 듣자마자 너무 좋아서 바로 결정하게 되었다.
나찰: 스카이민혁은 그전부터 눈여겨보던 친구였다. 개인적으로 래퍼의 성장 과정을 매우 중시한다. < 쇼 미 더 머니 > 시절 부족했던 부분들을 놀라울 정도로 빠른 시간에 보완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그 친구의 연습 과정이 눈에 선했다. 그러한 성장세와 진정성에 끌려서 “가리온 앨범에 참여하는 신예 래퍼가 있다면 스카이민혁 하나뿐이다”라는 생각까지 했다.
프레디 카소나 이안캐시, 돈 싸인 같은 후배들이 신보의 비트를 만들어주었다. 이안캐시는 808 베이스가 강조되는 더티한 트랩을 구사하는 프로듀서인데 ‘Pawn shop’에선 가리온의 기존 색채와도 잘 맞아떨어져서 인상적이었다. 비트 수급이랑 비트 초이스 과정이 궁금하다.
메타: 수급하는 과정에서 이미 딥플로우가 설계해 놓은 전체적인 지향성에 맞춰 비트 수급에 들어갔다. ‘Blunder’ 비트메이킹한 식스틴 레벨즈(16 LEVELZ)는 부산 출신으로 나이가 무척 어리다. 요즘 뮤지션들이 잘 안 찍는 AKAI MPC로 묵직한 비트를 만드는 친구라 가리온과 잘 어울린다. 우선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는 비트를 다 받은 후 각자의 베스트를 선정해 취합하는 과정이었다. MC 메타와 나찰, 딥플로우 세 사람이 고른 게 거의 비슷했다. ‘Chess knight’ 같은 경우 제작 과정 후반부 딥플로우가 킬링 트랙의 필요성을 감지하고 만든 곡이다.
신예 프로듀서들의 비트 중에서 두 분이 각자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나찰: 완성도보다 전체적인 랩 해석의 측면에서 봤을 때 식스틴 레벨즈가 비트 만든 ‘Blunder’다. 가장 메타와 나찰스런 플로우가 나왔다.
메타: ‘Monochrome’이다. 기존의 비트에서 한번 변경된 곡으로 실험성을 다량 투영했다.
신보 공연도 잡혀있는가?
1월 4일 홍대 롤링홀에서 3집 발매 콘서트를 연다. 신보 트랙들 위주에 가리온의 대표곡을 짧게라도 섞어서 대부분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에 이렇게 했던 공연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그런 공연이 있다면?
나찰: 아무래도 랩비트다. 3집 직전이라 타이밍이 좋았고 전체적인 청중 분위기도 뜨거웠다. 최근엔 멀티 장르 페스티벌로 변화했지만 대구힙합페스티벌, 힙플페(힙합플레이야 페스티벌)와 더불어 힙합이 정체성인 귀한 축제이다.
MC 메타는 현재 인천 거주하는 것으로 안다. 원래부터 인천 사람인가?
부인의 거주지이다. 원래 상암동에 살았다. 부인과 결혼을 결심하고 난 후 2011년 주소지를 검단으로 옮겼고 2012년에 이사했다. 인천에 실력파 래퍼가 많다. 일단 라임어택이 떠오르고 비와이와 리듬파워로 활약했던 행주, 지구인도 이 지역과 인연이 깊다. 마포구 망원동과 신촌 지역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르더라. 색깔로 치면 붉은빛의 에너지가 감돈다. 좀 공격적이고 야성적인 붉은 색이라 인천 공연장에서 더러 반응이 세게 오곤 했다. 문화재단 기획으로 부평역 지하상가 근처 만남의 광장에서 한 공연에 가리온 아닌 MC 메타로 무대에 섰는데 딱히 힙합 팬이 아닌 듯 보이는 청중들도 환호가 뜨거웠다.
그간 인천에서 크고 작은 무대에 다수 선 걸로 알고 있다.
최근엔 뮤직 플로우 사운즈와 랩비트에 섰고 부평구 문화재단 주관으로 열린 2017년 부평 솔아솔아 음악제, 정상수, 미료와 함께한 인천 남구 컬쳐스트리트 페스티벌 등 인천에 있는 콘서트에 자주 임했다.
공연 이외의 인천과의 또다른 인연도 있는가?
OBS(경인방송)에 몇 차례 출연했다. 경인방송 라디오 채널에서도 몇 차례 방송한 기억이 있다. 나에게도 DJ 제안이 들어온 적 있지만 결국 무산되었다. 아마도 델리스파이스 최재혁씨가 진행하는 장수 프로그램을 보면 확실히 장르 음악을 지지하는 모습이다. 부평 뮤직플로우페스티벌의 아티스트 라인업에도 그러한 지향성이 도드라진다.
3집 크레디트엔 대중에게 익숙한 MC 메타 대신 메타.로 확인된다.
현재 아닌 로다운30 윤병주 대표가 설립한 빅서클이라는 레이블에 계약된 상황이다. 원래 솔로 앨범 기획으로 들어가게 된 회사이다. 가리온 3집과 OGS라는 프로젝트, 솔로작이 한꺼번에 겹치게 되었다. 코로나 직전 2019년 이태원 페이더라는 힙합클럽에서 두 번에 걸쳐 공연했다. 예전 마스터 플랜을 구현하고자 기획한 콘서트로 시작은 디제이 렉스와 주석, 가리온이 맡았다. 미국 락 더 벨스(Rock the Bells)처럼 신에서 잘 안 보이는 래퍼들을 소환하는 컨셉으로 두번째 파티에 사이드비가 컴백하기도 했으나 갑작스러운 팬데믹으로 지속 불가한 상태가 되었다. 그 즈음 윤병주의 레이블과 손잡게 되었고 싱글을 3개 정도 발매했다. 윤병주가 MC메타의 고정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다른 방향의 “메타”를 제안했고, 뒤에 점을 붙인건 MZ스타일이라고 한다. (웃음)
* OGS: MC 메타와 사이드비, 주석이 결성한 프로젝트 그룹. 2024년 9월 데뷔 EP < The Origin >을 발매했다.
* 락 더 벨스(Rock the Bells): 캘리포니아 남부에서 매년 열리는 힙합 페스티벌로 힙합 역사와 진화 과정 같은 문화 역사적 가치 재고에 주력한다.
MC 메타는 로다운 30 이외에도 록 뮤지션 김바다와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블랙 벨벳 필이라는 김바다와 MC 메타, DJ 티즈 3인조이다. 김바다로부터의 연락은 십년전쯤 김바다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격적 성향의 랩을 활용해 ‘Killing in the name’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같은 음악을 구사해보자는 취지였다. 아쉽게도 무산되었던 프로젝트를 다시 끌어올려 ‘Black velvet feel’ 비롯 싱글 4~5개 정도 발매했고 지금은 잠정 휴업이다.
어렸을 때부터 록과 메탈을 사랑했다. 클래식 록에서 헤비메탈로 넘어가 데스메탈, 그라인드 코어, 인더스트리얼까지 진입했다. 트렌트 레즈너의 나인 인치 네일스와 미니스트리까지 갔지만 마릴린 맨슨에서 무릎 꿇고 말았다(웃음) 기본적으로도 하이브리드를 좋아하는 성향 덕에 로다운 30, 해리빅버튼과도 협업했다. 반대로 나찰은 완연한 블랙뮤직 마니아다.
< 쇼 미 더 머니 > 한동철 PD와 인연이 깊다고 들었다.
1999년 그가 엠넷에서 최초로 만든 “힙합 더 바이브”가 그의 입봉작이다. 1998년 가리온을 결성하고 활동 개시할 때쯤 컨설팅 회사에서 근무하던 대학교 동창 형이 힙합과 교육을 연결하고 싶다고 연락을 걸어왔다. 그 형이 일하던 회사 대표가 마로니에 공원에서 비보이들이 공연하는 거 보고 “아예 이걸 수강생들에게 가르치면 어떨까?”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대표에게 나는 DJ의 중요성도 언급했고 적극적인 투자로 일본 오디오 브랜드 테크닉스의 DJ 장비를 두 대의 믹서 포함 10세트 짤 만큼 당시 국내에서 보기 힘든 모습을 연출했고 힙합의 4대 요소인 DJ와 MC, 비보이와 그라피티를 모두 아울렀다.
그 시기 처음 만난 이가 한동철이다. “힙합이 왜 멋있냐?” 물어오길래 즉흥 랩을 보여줬고 그걸 찍어가더라. 얼마 후 힙합 더 바이브가 방영되었다. 핵심 코너가 프리스타일이었고 진행자였던 DJ 래피의 진행과 더불어 게스트 래퍼들이 프리스타일 랩을 보여주는 구성이었다. 이처럼 그가 가진 힙합에 대한 애정 덕분에 대중들과 힙합이 문화적으로 더 가까워진 측면이 있다.
최근 프리스타일 랩 대중화에 기여한 “마이크스웨거(MIC SWAG)” 시즌 7에 참가해 기량을 선보였다. 프리스타일 잘한다고 느끼는 후배가 있나?
메타: 지금은 아무래도 쿤디판다가 먼저 떠오른다. 조원우도 잘하고. 조금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올티와 서출구. 제이제이케이(JJK)와 술제이도 빼놓을 수 없다. 개인적으론 한국 프리스타일 랩 문화에 이바지한 사람이 술제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버드와이저로 추정되는 해외 맥주 회사 주최로 프리스타일 컴피티션을 홍대 놀이터에서 반년 이상 진행했다. 매달 “이달의 챔피언”을 뽑는 형식으로 토너먼트 진행했고 그때 션이슬로우 등과 더불어 심사위원을 맡았다. 장충체육관에서 진행할 만큼 규모도 컸다.
어느 날 레게풍 랩 구사하는 사람과 전혀 래퍼처럼 안 생긴 바싹 마른 다른 사람이 결승에서 붙었다. 마른 친구는 상당히 정석적인 랩을 했고, 레게 스타일 래퍼는 라임 없이 관중들이 좋아할 만한 화려한 사운드를 덧붙였고, 결국 그가 승리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땐 랩의 기본조차 안 되어 있는 수준이었지만 당시 심사 기준이 관객 함성이었다. 지방에서 고생해서 올라온 친구가 이를 갈았고, 결국 다음 회차에서 우승했다. 8강부터 하나하나 퍼포먼스가 도드라졌다. 그때까지 한국의 프리스타일 랩 배틀에서 보아왔던 “리듬에 단어 욱여넣으며 이야기 끌고 가기”에서 벗어나 펀치라인을 구사했다. 그게 바로 술제이였다. 그래서 술제이를 한국 프리스타일 랩 역사에 주요하게 거론될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 다 < 가리온 1 > 발매 시점 기준 데뷔가 빠른 편은 아니다. 그것으로부터 얻는 차별점이 있다면?
나찰: 학교에서 가르칠 때 “성공은 25세 이후에 해라”라는 말을 줄곧 한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음악에서 가장 중요한 철학과 세계관을 구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스스로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 아는 과정이 수반된 후 데뷔해도 충분하다.
올드스쿨의 강점은 서사라고 생각한다. 최근 크루셜 스타가 ‘368-11’이란 단체곡으로 소울컴퍼니의 추억을 들춰내기도 했다.
메타: 아쉽게도 아직 곡을 못 들어봤다. 마이노스부터 작업 소식을 들었다. 이런 스토리텔링을 담은 작품들이 많아지면 좋겠다. 서사가 쌓여 나중에 헤리티지(유산)가 된다.
나찰: 힙합이 타 장르에 비해서 재밌는 부분은 시대마다 극단적인 변곡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보니 정통성이란 개념이 모호해지는 지점도 있다. 미국에서 과거 MC들이 재소환되며 신구 조화가 생기는 모습이 좀 더 또렷해 보인다. 그래서인지 과거의 것들을 끄집어내는 최근 한국 힙합 신도 퍽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혹시 해외에서도 반응이 오는가?
메타: 의외로 인도네시아에서 감지된다. 몇 해 전 인도네시아에 다녀왔던 (힙합 웹진) 힙합플레이야 대표가 “현지에 가리온과 비슷한 2인조에 < Garion 1 >과 < Garion 2 >의 중간쯤 되는 음악을 구사하는 팀이 있다”라고 알려줬다. 최근에 인도네시아 래퍼가 인스타그램 DM으로 신보 잘 들었다고 연락이 오기도 했다.
25년 넘게 활동하면서 가리온이 들었던 가장 기분 좋은 찬사는 무엇이었는가?
나찰: < Garion 2 >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던 순간이다. “최우수 랩 & 힙합 음반”, “올해의 음반”을 수상했다. 두 번이나 수상 소감을 했고 끝나고 술을 진탕 먹고 아침에 속이 뒤집어지는데도 기분 좋았던 기억이 선명하다.
메타: 음악적 시도의 이면을 알아봐 주는 경우다. 가사의 표면적 내용 이외의 여러 맥락과 상징, 숨겨진 의도를 파악해 줄 때 희열을 느낀다.
진행: 임진모, 손민현, 한성현, 박승민, 염동교, 장준환
정리: 염동교
사진: 정기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