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네스’, ‘타인인 줄 알면서도’, 유심초의 ‘나는 홀로 있어도’, 박정수의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 ‘아름다운 눈물 꽃’이 그가 쓴 곡들이다. 특히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은 서태지와 아이들 광풍이 있기 전 1991년 빅히트했고 백영규가 직접 제작했다. 음반제작자로도 성공을 거둔 인물이기도 하다. 어쩌면 오랜 세월을 쉼 없이 달려온 결과, 이렇게 넓은 활동 보폭과 다채로운 입지를 갖게 되었을 것이다.
“음악을 통해 삶을 알아간다”
Q. 음악을 하며 가장 기쁠 때는 언제였나요.
A. ‘슬픈 계절에 만나요’에서는 오히려 못 느꼈다. 남들이 알아주는게 마음으로 와 닿았을 때는 박정수의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을 제작했던 즈음이었다. 돈도 좀 생기고 사람들도 많이 알아봐주고 살 맛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웃음) 제작자로서 우쭐한 그런 것에 취하기도 했고, 거품이 빨리 빠진다는 걸 그땐 잘 몰랐다.
Q. 박정수 정규 1집 <그대 품에 잠들었으면>은 정말 라디오를 뒤덮었습니다.
A. 히트 이후에 방황도 길었다. 제작자 입장에서 박정수의 음폭이 넓으니까 그걸 다 쓰고 싶었다. 그러다보니까 음악적으로 자기 만족은 있지만 대중들과 서서히 멀어지게 되더라. 대중음악은 대중이 좋아해야하는데 나는 ‘내가 만들고 대중들은 좋아해라’ 이런 방향으로 변하게 된 거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대중한테 외면을 많이 받았다. 그 버릇을 고치게 된 게 거의 2010년 즈음인 것 같고.
Q. 또 다른 호시절은 없었는지
A. 이건 좀 어려운 얘기인데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배운 시절을 꼽고 싶다. 통기타로 음악을 시작했지만 내가 듣기 좋아하는 음악은 어쩔 때는 록이고 또 어쩔 때는 엔야(Enya) 풍의 신비로운 곡들이다. 언제인가부터는 또 미디에 손 대게 됐다. 엄청 완성도 있는 음악을 만들고 한 건 아니지만 다양한 장르들을 조금씩이라도 건드려봤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매번 내가 이런 것들도 할 수 있겠다는 걸 배우고 느끼고 늘 자라고 잇다.(웃음)
Q. 알려지지 않았지만 스스로 수작으로 생각하는 곡이 있나요.
A. 13년 간 진행한 라디오 프로그램 제목과 같은 노래 ‘가고 싶은 마을’을 꼽고 싶다. 2015년에 발표했는데 방송을 하며 받은 영감을 담았다. 그 전 2011년 곡 ‘그리움 안고 헤어지자’도 애정을 갖고 있다. 트로트에 약간의 랩을 넣었다. 음악적 실험을 했던 곡이다.
Q. 백영규에게 음악이란 무엇인가요.
A. 그때그때 답변이 달라진다. 질문이 상당히 방대하지 않나. 다만 가장 솔직한 건 음악을 만드는 방법을 10가지로 하면 10개를 다 통과해야한다. 그게 정말 힘들다는 거다. 라디오 하면서 이와 관련된 걸 많이 배웟따. 문자가 들어오면 늘 진실한 답변을 하려고 습관을 들였다. 그러니까 청취자들이 굉장히 좋아해줬고 그런 과정들이 가사를 쓸 때 가장 큰 주안점으로 작용했다. 가사를 쓴다기보다 사람을 쓰자 다짐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음악을 통해 삶을 살아간다. 음악은 내게 삶이다.
Q. 백영규 노래는 늘 한편의 슬픈 시와 같습니다. 시적 감성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A. 습관과 노력이다. 타고난 건 절대 아니다. 멜로디를 쓰기 위해서는 먼저 가사를 써야하는데 그 순간이 정말 괴롭다. 예를 들어 작곡을 한 시간 한다면 가사는 일주일이 걸린다. 그 시간과 순간들을 늘 빼둔다. 주변에서 영감을 얻으려 노력하고 느낀 감정을 그대로 잘 풀어내려 늘 촉각을 곤두세운다. 습관적으로 말이다. 최근 백운산 쪽으로 이사를 갔다. 산에서 많은 영감을 받고 있다.(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