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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부평 X IZM] 애스컴 아카이브 인터뷰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쉰세 번째 주인공은 < 독립음악 >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수상한 후 최근 신보를 예고한 래퍼 최엘비다.
3년 전, 수많은 보통의 청춘들은 최엘비가 들려주는 진솔한 고백에 공감하고 또 감동했다. 그해 쟁쟁한 후보를 이기고 이뤄낸 제19회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 수상은 곧 < 오리엔테이션 >, < CC >를 통해 풀어냈던 인생 스토리의 하이라이트와도 같다. 가장 고통스러웠던 기억을 화려한 순간으로 탈바꿈한 뒤에도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고 쉴 새 없이 달려왔다.
이후 첫 단독 콘서트 < 제1회 신입생 환영회 >를 개최하고 여러 차례 차기작을 예고했던 만큼 2년 만에 다시 진행하는 인터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깃거리가 쌓였다. 이번에는 그의 작품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인천에 대한 소회도 함께했다. 발매를 앞둔 앨범 < Her >에 관한 이야기부터 훗날 디스코그래피의 방향까지, 최엘비라는 아티스트의 현재와 미래가 한 시간의 대화 속에 가득 담겼다.
저드와 함께 싱글 '물'을 발매하며 돌아왔다. 최근 어떻게 지냈는가?
앨범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처음 구상과 상황이 달라져 여러 변동이 있었다. 요즘은 거의 작업만 하며 지내고 있다.
‘물’의 커버 아트가 참 감각적이다. 어떻게 찍은 사진인지.
음악을 어떻게 영상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과거부터 구상했던 장면이다.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때 커버도 함께 찍었는데 물안경 안에 눈물이 고여 있어 써도, 벗어도 물속에 있다는 이미지를 형상화하고자 했다.
자기 고백적인 두 아티스트가 모인 노래라 인상 깊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되었고, 곡을 만들 때 스타일은 어떤가?
저드의 데뷔 EP < Too Many Egos >에 수록된 ‘너는 생각조차 안 하겠지 뭐’에 피처링하며 시작된 만남이다. 저드의 작업물을 정말 좋아하고 가사를 풀어내는 방식이 나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직관적인 감정 표현과 겉으로는 센 척하지만 슬픈 속내가 느껴진다는 점에서 그렇다. 함께 이야기할 때마다 서로의 생각과 이를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에 공통점이 많다고 느낀다.
얼마 전 신보 쇼케이스에도 함께했는데, 준비 과정과 반응은 어땠는가?
행사 장소를 뒤늦게 알았는데 정말 예뻐서 좋았다. 준비를 하며 앨범 수록곡 하나를 들려주는 시간이 있었는데 관객들의 분위기가 되게 안 좋아지더라. 내가 딱 원하는 분위기가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웃음) 또 너무 오랜만에 이름을 내건 행사인 만큼 사람들이 별로 안 올 줄 알았는데 많이 와 주셔서 고맙고 행복했다.
인천 토박이 아티스트로서 < 독립음악 >에는 학창 시절과 그 이후, < 오리엔테이션 >과 < CC >에는 대학생 때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등 최엘비 음악 곳곳의 배경으로 인천을 찾아볼 수 있다. 자신에게 인천이란 어떤 공간인가.
애증의 공간이다. 서울에서 인천으로 넘어갈 때 간판이나 건물에서 풍기는 분위기가 달라지는데 그 변화를 느낄 때마다 마음이 편해진다. 동시에 안 좋았던 기억이 공존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천에서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어딘지 궁금하다.
동인천을 제일 좋아한다. 예쁜 공간이 많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동인천에 데리고 가는 편이다. 또 신포국제시장과 근처 차이나타운, 적산가옥 거리도 건물이 멋져 자주 찾는다.
자주 방문했던 음악적 공간이 있는지.
가사에 쓰기도 한 인하대학교 후문 명품 노래방. USB에 비트를 미리 준비한 후 친구들과 함께 랩을 연습하고는 했다. 너무 붐비는 분위기보다는 적당한 선이 있는 게 좋아 인하대학교 후문에서 자주 놀았던 기억이다.
학창 시절 추억이나 기억에 남는 일화도 들려줄 수 있나?
고등학교 때 섹시 스트릿 크루 모임으로 부평을 처음 갔었다. 고등학교 시절 리듬파워 형들이 축제 게스트로 오셨을 때 대기실에서 친구들과 랩을 들려줬던 게 생각난다. 바다에 가까운 탓인지 워낙 자유분방한 도시라 그런 분위기가 힙합 문화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이전 인터뷰에서 이후 앨범이 친구들과 랩으로 여행을 떠나는 < MT >라고 언급했다. 또 기존보다 강렬한 스타일의 < 찌질의 역사 >를 예고했던 기억이 난다. 정식 싱글 발매는 없었지만 여러 스니펫과 멀티 엔딩 등의 컨셉을 팬들에게 공개했는데 < Her > 다음으로 미뤄진 것인지.
< MT >를 제작하다 때가 아닌 것 같아 더 완성도를 높이고 싶다는 욕심에 보류했다. 이후 시작한 < 찌질의 역사 >는 인터랙티브 무비 스타일의 게임처럼 루트를 나누어 결말을 결정하는 형태로 기획했다. 그런데 프로듀서가 꼭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잠시 미룬 후 예고편 격으로 이번 앨범을 작업 중이다. < Her >은 모두 여자 얘기에 피처링진 역시 여성 아티스트다. 어두워진 < CC > 같은 느낌인데 주변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을 때는 되게 기분 나빠하더라. 어머니 역시 안 좋아하셨던 기억이 난다.
최엘비의 ‘독립음악 그 후’가 궁금하다.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고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을 수상하기도 했는데 개인적인 소회가 어떤가?
제일 좋았던 점은 콘서트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처음으로 들었다는 것이다. 가족들이 함께 공연을 관람하며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니 내가 좋은 작품을 만들었다는 생각에 뿌듯함이 밀려왔다.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메시지로 감동을 표현하거나 추천 음악으로 언급해 주셔서 행복하다. 또 오히려 ‘내가 이런 앨범을 냈는데’ 하는 생각에 부담이 많이 사라졌고 눈치도 안 보게 되었다.
최엘비의 작법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가사로 진정한 스토리텔링 래퍼다. 가사를 쓰고 완성해 내는 방법이 궁금하다.
앨범을 만들기 전 커버를 먼저 생각한다. < 독립음악 >도 처음에 부모님의 차 위에 서 있는 장면부터 시작했고, 영화관 안에서 친구들에 둘러싸여 울고 있는 아트워크도 마찬가지다. 콘티처럼 우선 그림을 완성해 둔 후 시작하는 편이다. < Her > 역시 핑크색 머리를 빡빡 깎은 채 울고 있는 트래퍼 캐릭터의 일대기를 그려내고 있다. 계속 눈물을 흘리는데 머리카락이 분홍색인데다 그릴즈까지 끼고 있으면 우스꽝스럽지 않나. 내 삶의 부정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찌질함과 아이러니함 등의 키워드를 담아내려 한다.
주로 본인 삶 속에서 소재를 찾을 텐데 음악과 생활이 구분되지 않아 어려운 점은 없는지.
음악을 만들 때 내 삶 속에 캐릭터를 불러온다. < CC >를 예로 들면 앨범 커버의 머리에 나비를 꽃은 인물이 대신 나에게 들어와 곡을 쓰는 것이다. 당시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미쳐 있었고, 곡 속 울음소리도 실제로 낸 것이라 마치 접신한 듯한 느낌이었다. 보통 다 끝나면 한풀이하는 것처럼 캐릭터를 보내 주는데 < 독립음악 >은 그게 현재의 나 자신이다 보니 조금 힘들었다. 무언가 텅 빈 듯한 느낌이더라. 이어지는 < MT >는 ‘비어 있다(empty)’란 뜻이기도 한데, 작품을 더 잘 만들기 위해 공허감도 가지고 있으려고 한다.
자기 내면을 보여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나 불안감은 없었는가?
부끄러운 적은 한 번도 없고 오히려 후련하다. 내 약점을 먼저 말하는 쪽이 더 편하니까.
그러한 가사 작법 혹은 랩 스타일을 만드는 데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가 있다면?
기리보이 형에게 많이 배운다. < 쇼미더머니 3 > 때 처음 만나 음악 취향이 비슷해 가까워진 후 롤러코스터, 3호선 버터플라이 같은 밴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초반 십센치의 음악도 떠오른다. ‘그게 아니고’에서 헤어진 애인에게 계속 변명하다가 마지막에 ‘보일러가 고장 나서 울지’라고 말할 때의 감성이 멋졌다. ‘서랍에서 네 양말이 나왔다’ 같은 가사를 힙합에서 쓰기는 어렵지 않나. 그러한 감각을 랩으로 옮겨 보고 싶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쓴 곡들 중 지향하고자 하는 느낌을 제일 잘 구현해 낸 트랙은 무엇인가?
< CC > 앨범이 전체적으로 그렇다. 타임루프물을 좋아하는데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도 계속 같은 선택을 하겠지만 너를 말려 보겠다’는 표현이 되게 잘 나와서 마음에 들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상상하거나, 작사를 도와주는 쪽을 생각해 본 적은 없나.
몇 번 아이돌 작사 의뢰가 와서 준 적이 있는데 너무 어려웠다. (웃음) 피처링 요청 역시 곡에 나와 맞닿은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니, 어느 날 보니까 매번 하던 얘기만 하고 있더라. 그래서 앞으로는 진짜 내가 쓰고 싶은 주제의 곡을 준비한 사람에게만 해주려고 한다.
최근 3년 넘게 몸담았던 데자부 그룹과의 계약이 종료되었다. 다시 인디펜던트로 돌아가게 된 셈인데 어떤 생각 혹은 마음가짐인지 말해줄 수 있나.
그동안 회사가 정말 많은 걸 도맡고 있었더라. 과거 < 오리엔테이션 >과 < CC >도 홀로 만들었지만 레이블에 속해 있다가 다시 나와서 시작하니 힘들면서도 감회가 새롭다.
브로콜리너마저, 김뜻돌 등 인디 아티스트들과 교류가 많다. 계속해서 이런 작업을 이어 나갈 예정인가?
이미 한국사람과 한 곡을 같이하기로 되어 있고, 인디 신 아티스트로는 웨스턴 카잇 님께 꼭 피처링을 부탁드리고 싶다. 또 < 독립음악 > 때 ‘주인공’ 후반부에 김뜻돌에게 피처링을 맡겼다가 결국 싣지 못하게 되었는데 다시 한번 함께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우효 님, 한로로 님도 정말 좋아한다.
작년에는 데이식스의 영케이 앨범에 피처링하기도 했다. 협업하고 싶은 메인스트림 아티스트를 꼽아 본다면?
나처럼 반려동물로 퍼그를 키우시는 양희은 님이 떠오른다.
힙합 신에도 새로운 신예들이 많이 등장했다. 최근 힙합 신은 어떤 것 같은가?
대중성이 많이 줄어들어서 공연을 해도 예전처럼 자주 매진되지 않는다. 동시에 코어 팬들은 더 깊어지고 매니악한 래퍼들도 많이 등장하고 있다. 아직 좋은 음악을 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다. 하나 아쉬운 점은 내가 자주 듣는 인디 음악처럼 가사를 깨알같이 쓰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최근 인상 깊게 들었던 래퍼를 꼽자면.
일상적인 가사 면에서는 원슈타인이 좋다. 또 루시갱도 정말 재미있게 듣고 있다.
어느덧 정식 데뷔 10주년을 맞았다. 최엘비의 다음 10년은 어떤 모습인가.
10년 뒤면 마흔두 살인데 그때까지 음악을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생각하는 은퇴는 대학 시리즈의 마지막으로 < 제적 >이라는 앨범을 발표한 후다. < 독립음악 >을 내고 나서 지나간 시간에 머무르기보다는 현재에 집중해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MT >와 < 제적 >은 명칭만 대학교에서 따왔을 뿐 내 인생의 이야기가 될 예정이다. < Her > 역시 < 독립음악 > 이후 있었던 어두운 일들과 삶의 일부를 담아낸 기록이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이다. 인생 곡, 앨범 혹은 아티스트가 있다면?
브로콜리너마저의 < 보편적인 노래 >. 내가 음악을 하도록 마음먹게 만든 앨범이다. 랩으로는 처음으로 들었던 언더그라운드 힙합 앨범인 JJK의 < 비공식적 기록 >을 꼽고 싶다.
진행: 손민현, 임동엽, 임선희, 한성현, 박승민
정리: 박승민
사진: 임동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