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문화도시부평 X IZM] 애스컴 아카이브 인터뷰
웹진 이즘(IZM)이 문화도시부평과 함께 하는 < 애스컴 아카이브 부평사운드 >는 인천과 부평 지역 출신이거나 이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들을 순차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 기획이다. 지금까지 이곳 출신의 여러 뮤지션들이 자리해 자신의 음악 이야기와 인천 부평에 대한 추억을 들려주었다. 이번 쉰두 번째 주인공은 동네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다정한 이웃 캐릭터 뮤지션 덕호씨다.
‘번아웃이 지배하는 시대’라는 말이 과언이 아니다. ‘보어아웃’, ‘토스트아웃’과 같이 무기력 상태를 지칭하는 신조어가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는 와중에 덕호씨는 한동안 잊고 있던 단어 ‘해피 바이러스’를 떠오르게 했다. 메가폰을 들고 무대를 누비며 아드레날린을 폭발시켰던 슈퍼키드의 무대를 연상케 하는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해 인터뷰 내내 밝은 기운이 훈훈히 감돌았다.
그뿐만 아니라 알찬 내용으로 가득하다. 슈퍼키드의 허첵, 캐릭터 프로젝트 덕호씨, 지역 뮤지션처럼 가지각색의 페르소나에서 우러나온 깊은 조언부터 음악 지원사업 관련 실용적인 팁까지. 그리고 ‘인천 요기조기 음악회 뮤직 앰버서더’답게 인천의 지역 축제, 각별한 장소 등을 이야기하며 인천에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열일하는 아티스트 덕호씨의 긍정 에너지가 지면으로도 닿길 바란다.
인스타그램, 유튜브, 블로그 등등 개인 SNS를 활발하게 꾸준히 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연스레 근황도 알게 되었다.
나의 일상생활을 계속해서 공유하면 누군가는 보게 되더라.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만나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작업 중인지 굳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 대화 초반의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단축하는 효과도 있다. 현재는 음악 작업을 틈틈이 하고 있다. 육아하면서 시간 날 때 작업하고 종종 의뢰가 들어오기도 한다.
SNS에 공연 홍보 기록도 꼼꼼히 하고 있다. 11월 초 인천음악창작소와 강원음악창작소의 연합 기획 공연 ‘ROUTE 46’에 참여하기도 했는데.
덕호씨 밴드는 인천음악창작소와 강원음악창작소 두 군데 모두 속한다. 덕호씨 밴드의 고정 멤버가 춘천에 살고, 나의 직장 본사 주소도 강원도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작년에는 인천에서, 올해는 강원에서 지원을 받아 공연하게 되었다. (‘ROUTE 46’이 국도 번호를 의미하는지?) 그렇다. 인천과 강원을 잇는 국도 번호다. 그래서 ‘인천과 강원 모두 걸쳐있는 우리 밴드가 이 기획 공연에 딱 맞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9월에는 대한민국 3대 재즈 클럽인 인천의 재즈클럽 버텀라인에서 라이브 공연도 했다.
‘뮤직 플로우 라이브클럽’은 2023년 부평구 문화재단 음반 제작 지원사업 그리고 2024년 인천음악창작소 x 부평구문화재단에서 함께 추진한 음반 제작 지원사업에 선정된 뮤지션들이 참여하게 된 공연이다. 덕호씨 밴드는 2023년 선정팀으로 섭외된 것이다. 인천에도 역사 깊은 라이브 클럽이 많으니, 클럽을 소개하는 취지로 시작하게 되어 기쁜 마음으로 공연을 마쳤다.
인천에서 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인천 관련 지역 축제 등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인천과의 인연이 어떻게 되는지.
검암에 산 지도 10년이 넘었다. 2005년부터 홍대에서 살다 2013년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검암으로 이사를 했다. 살아보니 만족도가 굉장히 높다.
올해 5월 ‘인천 요기조기 음악회 뮤직 앰버서더’로 선정되었다.
인천음악창작소의 지원 사업에 선정된 뮤지션 팀이 모여있는 단체대화방이 있다. 인천음악창작소 측에서 뮤직 앰버서더를 모집한다는 공모를 공유해주셔서 관심이 가게 되어 신청했다. 작년에 음반 제작 지원사업에 참여한 덕에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이처럼 뮤직 플로우 라이브 클럽, 부평 나눔장터 등 부평구문화재단과 여러 프로젝트를 함께 했다.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다면?
작년 굴포천에서 진행한 ‘봄날의 굴포’ 행사에 급하게 연락이 왔던 기억이 있다. (웃음) 집 근처이기도 하고 날씨가 참 좋아서 가족과 함께 참여했는데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어르신들이 많다는 정보를 듣고 트로트 노래를 넣는 등 빠르게 셋리스트를 짜서 공연했던 기억이 난다. 버스킹은 하면 할수록 ‘짬바’가 느는 것 같다.
그렇다면 버스킹 공연은 어떤 스킬이 필요한가?
관객 중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나를 보러 와준 팬들이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리는 것이 필요하다. 초반에 나에 관한 정보를 먼저 알려주면서 곡과 곡 사이 현장에 맞는 멘트를 적절히 넣어, 관객과 같은 공간과 시간에 있다는 유대감이 형성되도록 노력한다. 또한 악보를 보지 않고, 관객을 보면서 노래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내가 부르는 음악 순간순간의 감정을 내 얼굴을 보며 더 쉽게 느낄 수 있다.
지역 뮤지션으로 활발히 활동하면서 애착이 가는 인천의 음악적 공간이 있는지 궁금하다.
개항누리길이 생각난다. 인천 아트플랫폼도 있고, 차이나타운과 신포시장 근처에 길이 펼쳐져 있어 버스킹 공연 등 볼거리가 많다. 버텀라인처럼 오래된 라이브 클럽, LP바 등이 모여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언덕진 높은 곳에서 올라가면 바다도 보여서 동네가 낭만 그 자체다. 건물도 전부 1900년대 특유의 모던 클래식 스타일이다. 서울에 있었을 때는 몰랐던 예쁘고, 멋진 곳이다. 더 많이 알려지면 좋겠다.
개항누리길 근처 제물포 구락부에서도 공연한 적이 있다. 공연 이전에는 몰랐던 장소인데 인천 내에서 서울의 성수처럼 힙한 느낌이 있다. 특히 ‘인천맥주’라는 가게가 멋있더라. 가게 앞 길거리에서 디제잉 하는 등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음악적 공간 외에도 인상적인 장소가 있다면?
검암동에 살다 보니 아라뱃길을 좋아한다. 조깅, 자전거 타기 등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애용한다. 산책하다 보면 음악적 영감도 많이 받는다. 도시 속에 강변이 있어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 같아 참 좋다.
스스로 지역뮤지션이라고 소개한다. 이 용어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는가.
지역 뮤지션을 소개하는 콘텐츠에 참여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 뮤지션’이 수식어가 된 것 같다. 인천에서 자주 활동했을 뿐 홍대, 강원도, 대구 등을 많은 지역에서 공연을 하고 있어 큰 의미가 있진 않은 것 같다. 다만 인천에서 거주하고 있어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공연에 자주 참여하게 되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위주의 공모를 신청하다 보니 인천에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조금 더 개인적으로 들어가 보자. 2017년 캐릭터 프로젝트로 ‘덕호씨’를 제작하게 되었다. 덕호씨의 탄생 배경이 궁금한데.
아내가 디자인 관련업에 종사하고 있다. 어느 날 심심하던 차에 아이패드로 덕호씨의 초안을 그린 것에서 시작했다. 이전에 아내가 이모티콘 작업도 여러 번 했다 보니 ‘이 캐릭터 재밌다’ 싶어서 캐릭터에게 성격을 부여했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인 2011년쯤 옥탑방에서 개와 함께 살던 ‘나’를 모델로 삼았다. 그래서 이모티콘, 애니메이션 등으로 시작해 노래까지 발매하게 되었다.
전덕호라는 본명을 사용한 활동 대신 ‘덕호씨’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 이유는?
전덕호는 늙어가지만 덕호씨는 젊은 시절 그대로다. 처음에는 단발성 기획으로 재미 삼아 시작했다가 ‘가스밸브를 잠갔는지’ 뮤직비디오가 2018년 네이버 웹애니메이션 공모전에 최종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아내도 위 수상을 계기로 인디애니페스타에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초청받아 ‘가스밸브를 잠갔는지’와 ‘꽃잎’ 뮤직비디오를 극장에 상영했고, 나도 릴레이 애니메이션의 음악 감독으로 참여하는 등 커리어를 쌓았다. 우리 부부 모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만큼 약간의 어려움이 좀 있었지만 하나씩 잘해 나가고 있다.
캐릭터 뮤지션 ‘덕호씨’ 앞에 붙는 수식어가 있다. ‘동네에 한 명쯤 있을 것 같은 평온한/괜찮은/다정한 이웃’이라는 소개가 있는데 의미하는 바가 있는지.
동네에 보면 탱자탱자 놀고 걱정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하나쯤 있지 않나. 그런데도 계속 살아가지는 사람들, 그런 캐릭터를 모티브 삼았다. 덕호씨의 모토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괜찮아’다. ‘어떻게든 살아가지더라’ 하며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 살아보니 ‘아님 말고’라는 마인드가 나의 멘탈을 지키는 데 꼭 필요하더라.
캐릭터 소개 혹은 구어체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덕호씨의 음악은 일상 그 자체다. 그래서 더욱 ‘위로’라는 키워드와 맞물리는 듯하다.
노래에 공감이 필요하다 보니 일상을 담아내고 있다. 덕호씨 작업을 하며 나도 많이 편안해졌다. 슈퍼키드 활동 당시에는 성과가 항상 뒤따르는 만큼 타이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었다. 일정이나 특정한 목적에 쫓기지 않고 음악을 만들고 싶을 때 만들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하다. 이런 마음으로 시작된 음악이라 위로와 위안이 맞물려지는 것 같다.
파이팅넘치는 위로의 음악이 대다수지만 가장 최근에 발매한 ‘낯선 곳’은 우울의 정서를 담았다.
‘낯선 곳’은 번아웃이라는 감정을 소재로 삼았다. 원래 이 곡은 드라마 OST 작업의 일환으로 여자 주인공이 겪는 번아웃을 표현한 노래다. 아쉽게도 마지막 단계에 어그러지면서 내가 부르게 되었다. 여주인공의 심정을 담다 보니 아무래도 여성 보컬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인천음악창작소에서 이삭 씨(현 김보리)를 소개해 주셨다. 인천음악창작소를 통해 인연이 닿게 된 것이다.
싱글을 수록한 일종의 컴필레이션인 < 괜찮은 덕호씨 > EP를 제외하면 현재 싱글 단위로 발매 중이다. 음반 단위의 작업물 계획이 있는가?
싱글 하나씩 하나씩 꾸준히 하는 게 좋긴 하지만 콘셉트 앨범에 대한 욕심도 있다. 곡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키워드나 색깔이 필요하지 않은가. 지금 주제로 생각하고 있는 건 ‘찌질의 역사’다. 미발표곡 중 4~5곡이 찌질한 남자의 느낌이라 작품을 관통하는 키워드로 ‘찌질의 역사’를 담아 음반을 내고 싶다. 예를 들어 미발표의 ‘느린 걸음’이란 곡도 연인 간의 이별을 다루고 있는데, 헤어지자고 말했지만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천천히 걷는 모습을 그려낸 것이다.
음악을 처음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음악은 늘 좋아했다.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컴퓨터 음악, 록 밴드, 힙합 동아리에 가입했다. 호기심이 많다보니 여러 동아리에 몸담게 되었는데 당시 록 밴드 동아리는 무서운 선배들이 많아 컴퓨터 음악 동아리를 병행하는 걸 들켜 쫓겨났던 기억도 있다. (웃음) 이후 PC통신 나우누리에서 밴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 클럽 공연 등으로 경험을 쌓다가 고향인 대구에서 하드코어 밴드를 시작했다. 제대 후에 ‘한번 나가볼까?’하는 마음으로 참여한 대학가요제에서 덜컥 금상을 받았다. 상을 받고 나니 아버지의 태도가 달라지더라. 그렇게 부모님도 인정해 주셨고 나도 욕심이 생겼다. 바로 휴학 후 홍대에서 일 년간 음악을 하게 되었고, 다음 해 2월부터 클럽 에프에프, 사운드홀릭 등을 거쳐 소속사에 들어가 밴드를 시작했다. 그렇게 슈퍼키드가 만들어졌다.
작사, 작곡을 하는 과정이 궁금하다. 어떤 점을 핵심으로 두고 음악 작업을 하는가?
어떤 점을 핵심으로 두고 음악 작업을 한다면 바로 노래 속 주인공, 화자의 상황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일례로 현재 작업하고 있는 트랙 중에서 장애인 밴드인 ‘좌충우돌 밴드’를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컴필레이션 곡이 있다. 인천장애인정보화협회와 연이 닿아서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 곡의 경우에는 ‘잠에서 깼을 때 침대에서 일어나기 싫은 사람’과 적절한 상황을 먼저 만들고 난 후 작업을 진행했다.
평소 즐겨 듣는 장르의 음악이 있는지?
가리지 않고 듣는 편이다. 최근에는 의뢰를 받게 되어 배호 선생님의 곡을 많이 듣고 있다. 너무 좋다. 특히 브라스 반주가 기막히다. 김시스터즈 등 1960~1970년대의 음악을 즐겨 듣고 있다. 그리고 최근 트렌드까지 놓치지 않으려고 음원사이트의 최신곡이나 SNS 음원 유통사 계정들을 팔로잉하면서 틈틈이 계속 체크하고 있다.
슈퍼키드의 허첵과 솔로 밴드 덕호씨로 활동하는 데 있어서 차이점이 궁금하다.
사람들이 허첵 했을 때 먼저 생각나는 건 에너제틱하고, 내일이 없는 이미지다. 슈퍼키드 노래 중에서도 잔잔한 곡은 있지만 아무래도 딱 떠오르는 건 ‘사는 게 그렇습니다~’ 하며 방방 뛰어다니는 밴드의 이미지 아닌가. (웃음) 그런 곡은 허첵으로, 또 편안한 곡은 덕호씨로 제작하고 있다.
이모티콘 제작 및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토키랜드’ 제작 그리고 딸과 함께하는 유튜브 ‘피리부는 아빠’ 등 음악 활동 외에도 다양한 분야를 병행하고 있다.
하나라도 대박이 터지면 하나만 할 텐데. (웃음) 모두 다 재미있게 하고 있다. ‘토키랜드’도 덕호씨의 ‘꽃잎, ‘매미’ 뮤직비디오를 보신 대표님이 먼저 연락을 주셔서 음악과 애니메이션 전반을 맡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게 되었다. 코로나로 음악 활동이 거의 어려울 때부터 3년 넘게 함께하다 최근에 그만두었다.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배려를 받아 감사했다. ‘피리부는 아빠’는 프로덕션 대표님이 ‘그럭저럭’의 라이브 클립 촬영을 담당하셨던 분으로 슈퍼키드 활동 때부터 친했다. 마침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을 키우는 아빠라는 공통점이 있어 함께 시작했다.
딸과 함께한 곡 ‘무지개술래’, ‘피리부는 아빠’ 유튜브 채널에서 딸바보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딸이 음악 쪽을 간다고 한다면?
‘무지개술래’는 딸과 함께 놀다가 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 다섯 살 때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라며 흥얼거렸는데 내 귀에 딱 꽂혔다. 그리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다가 딸이 들리는 대로 ‘누구나 꽃이 피었습니다’로 부르더라. 약간 뭉클했다. 그 가사가 큰 영감을 줬다. 공동 작사, 작곡으로 딸 이름을 올렸고 저작권협회에도 등록했다. 그래서 가끔씩 저작권협회에서 딸에게 용돈을 준다. (웃음) 딸이 음악 쪽으로 간다고 하면 말릴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것이 엄마의 그림, 아빠의 노래다. 그런데 그림 쪽에 더 소질이 있는 것 같다.
슈퍼키드나 덕호씨 등을 포함한 개인 작업물 중에게 가장 애정이 가는 곡을 뽑아달라.
딱 하나를 꼽는다면 슈퍼키드 2집의 ‘안녕하세요 여러분’이다. ‘그냥 좋아서 노래한다’는 내 마음가짐이 반영된 곡이다. 딴따라 기질이 있는 만큼 공연하면서 느끼는 즐거움 때문에 음악 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덕호씨 노래 중에서는 첫 데뷔곡인 ‘I’m easy’. 시작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덕호씨의 마인드를 확실하게 담았고 지금도 그런 삶의 태도로 살고 싶다는 소망이 담긴 노래다.
2024년을 돌아본다면 ‘밴드’라는 키워드를 빼놓을 수 없다. 체감하는 부분이 있는가?
아직 아이돌이 강세고 트로트의 굳건함이 있지 않나. (웃음) 그런데도 데이식스와 실리카겔의 약진이 있었는데, SNS상에서는 밴드 붐이라곤 하지만 실생활에서 크게 와닿는 건 없다. 얼마 전까지 열풍의 중심이었던 기존의 힙합이 사그라드는 과정에서 밴드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긴 하다. 밴드 붐을 체감하려면 동네 곳곳 버스킹하는 공간에서 밴드가 많이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시스템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밴드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여전히 타 장르에 비해 현격히 적다.
밴드 붐에 힘입어 슈퍼키드의 활동 재개를 기대해봐도 좋을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얼마 전에도 슈퍼키드의 작업이 있었다. 핸드볼 리그의 주제가를 만들고 녹음까지 완료했다. K리그 응원가 제작 경험을 계기로 맥스포츠 채널 측에서 공식 응원가 제작 의뢰가 들어와 참여하게 되었다. 5월에는 구미에서, 6월은 울릉도에서 공연하기도 했다. 마침 멤버들이 근처에 살아서 개인 작업할 때도 협업하곤 한다.
앞으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는가?
이센스를 굉장히 좋아한다. 내가 만든 비트에 이센스가 랩을 한다면 정말 좋을 것 같다. 어떤 비트에도 다 멋있게 랩 할 수 있는 친구니까.
그간 음악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뜻깊은 모멘트가 있다면?
슈퍼키드가 < 쇼바이벌 >에 나가 처음 우승했을 때. 그 사건으로 인해 지금까지 음악 할 수 있는 에너지가 생겼다. 아직도 기억에 남는 순간이다. 항상 1등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최종 우승하게 되어 카타르시스가 폭발했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앨범 작업이 될 수 있겠다. 앞서 얘기했던 ‘찌질의 역사’도 있고 EP를 발매한다면 덕호씨 밴드 멤버들과 첫 과정부터 앨범 준비하고 싶기도 하다. 내년에는 특정 가요제에 멤버들과 함께 나가보고 싶은 생각도 있다. 라이브 클립 등을 미리 준비해 보려 한다.
곧 데뷔 20년 차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후배 인디 뮤지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쁜 짓 하지 말기! 어렸을 때 잘못하면 나중에 크게 후회한다. (웃음) 일단 음악을 즐겁게 했으면 좋겠다. 계속 음악을 할 거면 나만 보지 말고 세상도 함께 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행복과 꿈을 위해 음악을 하겠지만, 여유가 있다면 약한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뮤지션이 되면 좋겠다. 밴드는 아래에서부터 시작된 저항의 이미지 아닌가. 강자는 자기들끼리도 알아서 잘 사니까 밴드는 기왕이면 약자의 편에 서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으로 놀지만 말고 공부도 하고 책도 읽고 세상 경험도 많이 하면 좋겠다.
추가로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그동안 인천에 살면서도 인천 내 지원 사업에 대해 잘 몰랐었다. 2021년 인천평화창작가요제에 상을 받고 나서 인천음악콘텐츠협회의 프로그램에 섭외가 되고, 또 다른 지원 사업도 알게 되었다. 후배들에게 지역 사업과 제도가 많으니 관심을 가져 보라고 알려주고 싶다. 비단 지원뿐만 아니라 동료, 선배 뮤지션들과 네트워크를 쌓을 수도 있다. 멘토가 생기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나.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태도가 중요하다.
이즘 공식 질문이다. 나의 인생 아티스트나 음악을 꼽아달라.
오아시스의 ‘Fuckin’ in the bushes’. 브래드 피트가 출연한 영화 < 스내치 >의 하이라이트 장면에서 흘러나오는데 내 안의 전투력을 올려준다. 오아시스 내한 공연 당시 오프닝 곡으로 크런치한 기타 사운드를 듣자마자 미칠 뻔했다. 나에게 에너지를 가장 많이 주는 노래다. 그리고 크라잉넛의 ‘명동콜링’. 경록이 형이 어떻게 이런 가사를 썼을까 질투 나기도 한다. (웃음) 인생에서 제일 많이 들은 앨범을 뽑자면 림프 비즈킷의 < Significant Other >. 20살 때 타워레코드에서 앨범 커버 보자마자 그 그래피티가 너무 멋있어서 바로 샀다. 첫 곡 드럼 인트로부터 그냥 신난다. 이후 3집 < Chocolate Starfish And The Hot Dog Flavored Water >까지 주구장창 들었고 당시 핌프록이 한창 유행이었는지라 밴드 활동에도 영향을 많이 끼쳤다.
진행: 임선희, 손민현, 임동엽, 한성현, 박승민
정리: 임선희
사진: 임동엽